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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종 (막8:22-26)  [장년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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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마당 작성일 18-05-02 08:24 조회 1,031 댓글 0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말씀은 요엘 선지자(욜2:2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 자녀들이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와 우리의 젊은이들이 성령 충만해서 예언과 환상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꿈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데,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도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해서 꿈을 꾸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젊은이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이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꿈이 젊은이들을 활기차게 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면 늙은이도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노인들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포기합니다. 이제 늙어서 더 이상 힘이 없는데 어떻게 무엇을 하겠다는 꿈을 갖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늙어도 꿈을 꿀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꿈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분명 밝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릴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꿈을 하나님의 손길 안에 두고, 그 꿈이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것이라고 하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의 꿈은 반드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실현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꿈을 꿉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즉 모두 그 꿈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공에는 비결이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공부 잘하는 비결이 있고, 맛 집으로 소문나서 성공한 식당은 그 성공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성공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많이 공부해서 박사가 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대학자가 되는 것이 성공일까요?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 큰 그룹을 만들어서 회장님 소리를 듣는 것이 참된 성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참된 성공의 비결은 바로 예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소경이 어떻게 꿈을 이루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 북동쪽에 위치한 ‘벳새다’에 도착하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풀어주신 곳이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이 회개하지 않아 예수님께서 크게 슬퍼하시며 책망하셨던 곳입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11:21) 

그런데 이곳에 예수님께서 도착하자마자 어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나와 고쳐주시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소경보다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고쳐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손대시기를 구했다’고 했습니다. 즉 그들의 간청은 예수님이 만져주시기만 하면 소경이 눈을 뜰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녀를 위해, 믿지 않는 남편을 위해, 믿지 않는 부모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은 믿는 자, 즉 그 사람에게만 해당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우리가 중보 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중보로 인해 모두 다 구원받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모두를 사랑해 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나의 가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우리의 회사를 살리고,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보기도에 열심을 내야하고, 나의 이익만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아직 믿음이 없었던 사람으로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주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손을 대달라고 간청했지만, 그 소경은 예수님께 간청하지 않고 있으며 수동적으로 이끌리어 온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아직 믿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이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친구들로 인해 이 소경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그의 일평생 소원이었던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 주변에 이런 믿음의 친구들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위해 함께 어려운 짐을 메고 갈 수 있는 친구, 앞을 못 보는 나를 위해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가 줄 그런 친구들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런 믿음의 친구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믿음의 친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소경의 믿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보면 그 소경은 예수님의 이끌림을 받아 마을 밖으로 나오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서서히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고, 그 믿음이 결국 그의 꿈인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 소경은 순종함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그것을 ‘아름다운 순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꿈은 이처럼 아름다운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순종해야 우리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종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아름다운 순종의 방법을 발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이 어디로 이끄시든지 순종해야 합니다.(23절) 

소경은 친구들에게 이끌려 힘들게 예수님께로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억지로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왔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를 예수님은 손을 잡고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마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친구들의 손에 붙잡혀 왔던 그가, 이젠 예수님의 손에 붙들려 다시 마을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앞 못 보는 고통을 겪고 있는 소경을 마을보다는 분명 길도 좋지 않은 마을 밖으로 예수님께서는 데리고 나가신 것입니다. 

이 소경은 “그럼 그렇지. 이 양반이 고치지 못하니까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나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는구나. 앞도 못 보는데 괜히 따라와서 고생만 하는구나!”하면서 예수님의 손을 뿌리쳤다면 그는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힘들게 따라왔는데 또다시 마을 밖으로 자기를 데리고 나가는 예수님께 불만을 품고 더 이상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소경은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은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손을 잡아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손을 붙잡아주신다면 어디로 인도하시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를 향하여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뿌리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길을 뿌리치면 그 순간 우리를 향한 희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의 손을 친히 붙잡으시고 인도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손을 잡아주시길 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단코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 생애의 최고의 자리로 인도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나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23절b-24절) 

소경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고치실까?’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침을 바르고 안수하는 것이 널리 알려진 치료 방법이었습니다. 소경을 고친 다른 사건이 요9:6에 나오는데 거기서는 예수님께서 침을 흙에 뱉어 이겨서 눈에 발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소경 역시 이와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을 밖으로 나온 예수님은 그 소경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셨습니다. 마가는 여기서 침을 손에 묻혀 그 소경의 눈에 바른 것이라고 부드럽게 표현하지 아니하고 침을 뱉었다고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경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앞 못 보는 것도 마음 아픈데 눈을 뜨게 한답시고 눈에 침 뱉음을 당한 것입니다. 얼마나 모욕적이고 화가 치밀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을 때 이 소경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맡기고 예수님이 물으실 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대답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어떻게 대우하시든지, 어떤 방법으로 치유하시든지 순종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사55:8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시는 방법으로 역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을 저버리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성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 원인임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에 맞추어주면 그것을 어떻게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까? 
내 생각은 나의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뿐인데, 어떻게 그런 이기심에 맞추어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회 각층에서 많은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자기주장이 강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틀리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내 생각대로만 되기를 바라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신앙생활을 저버리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기도하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싫어하고 오직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것만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니 뿌리치고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 생각과는 다르고, 하기 싫은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훈련이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25-26절) 

이 소경은 친구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자신이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우리의 믿음이 신실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꿈이 실현되도록 돕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소경을 마을에서 고치시지 아니하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그와 일대일로 인격적인 관계로 만나시고, 그의 믿음을 북돋아 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과의 첫 만남에서 이 핑계 저 핑계 대시며 그를 기다리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간청하자마자 예수님께서 그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 때 그 소경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를 느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소경의 믿음에 대하여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그를 치료하셨다는 점에서 우린 소경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안수하시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완전히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던 소경에게는 실망스러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소경은 실망하여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점진적으로 그를 치유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보시기 위함이셨을 것입니다.  

첫 번째 안수로 인하여 소경은 실망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두 번째 안수하셨을 때에 예수님이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고 기록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안수하시자마자 믿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 실망하지 않는 믿음,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을 우리에게서 하나님은 찾고자 하십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경이 눈을 뜨는 순간 그에게는 인생 최고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 기쁨은 말로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날마다 인생 최고의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그 시간이 최고의 기쁨의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때론 지옥 같을지라도 최고의 행복을 얻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인생의 성공에 대한 갈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때론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울부짖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학생은 공부 때문에, 직장인들은 직장의 문제 때문에, 사업하는 이들은 사업체 때문에, 부모들은 가정 때문에 얼마나 낙망하며 절망할 때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서 해결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디로 이끄시든지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나의 생각과는 다를지라도, 나의 길과는 다를지라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가운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면 우리 생애에 최고의 날을 주님께서 펼쳐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참된 성공은 순종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아름다운 순종으로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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