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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힘 (삼하12:1-6)  [장년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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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마당 작성일 18-04-27 15:37 조회 804 댓글 0
 
밀림의 왕자인 사자 한 마리가 코를 골면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사자의 자는 모습은 마치 어느 누구도 자신을 공격할 수 없다는 듯 도도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자 곁을 날아가던 모기 한 마리가 건방지게도 이 사자를 공격하기로 하고, 사자의 민감한 코와 눈두덩 귀를 사정없이 쏘아댔습니다. 사자는 처음에는 조그마한 모기가 그것도 쏘아 보아야 따끔 거리는 정도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자도 모기의 공격이 계속 되자 마침내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간지러워서 이리 저리 뒹굴어 댔습니다. 그러나 모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쏘아댔고 사자는 소리치며 뒹굴다 지쳐서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기가 밀림의 왕을 쓰러뜨렸으니 밀림을 제패한 것입니다. 
모기는 승리감에 도취 되어 쓰러진 사자 주위를 유유히 맴돌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만 가냘픈 그물에 걸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거미줄이었습니다. 사자를 이긴 승리자 모기는 끝내 거미 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솝 우화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읽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힘과 힘의 대결에는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센 사자도 가냘픈 모기에게 질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 모기도 거미에게 죽을 수밖에는 없다는 것으로, 그 어떤 힘도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분명한 것은 “힘이 있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는 그러한 것을 더욱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온통 힘을 가지려고 아우성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힘의 숨은 대결과 긴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노골적으로 힘의 대결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왜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면서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까? 바로 아는 것이 힘이 되니까 그런 것입니다. 좋은 성적이 힘이 되니까 그런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대학을, 그것도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세상을 사는데 힘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 우리는 돈을 벌려고 발버둥 치는지 아십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요? 아닙니다. 먹고 사는 것은 어느 정도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주기도문처럼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까지 발버둥 치면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돈을 벌려고 합니까? 바로 돈 자체가 힘이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입니다. 돈 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치병을 고치는 약이 나왔다고 합시다. 어떤 죽을병도 고치는 기술이 나왔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기술이 없어서, 약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줄 아십니까? 그 기술, 그 약을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없어서 죽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니 돈을 벌어야지요. 돈 그 자체가 곧 힘이니까요.

이처럼 사람들은 돈이든, 권력이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힘이 된다면 그것을 가지려고 어떻게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속된 말로 힘 센 놈이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힘 그 자체에 있는 것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기도 사자를 잡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겪는 모든 문제는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힘과 힘 사이를 연결할 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힘’과 ‘너의 힘’ 사이가 끊어져 있기 때문에 대화도 안 되고, 상대방의 힘을 내 힘으로 눌러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예전에 농사를 할 때 혼자서 삽을 들고 하면 오래 걸리고 금세 힘이 빠져 지쳐버립니다. 그러나 그 삽에 줄을 양쪽으로 묶어 세 사람이 함께 하면 능률도 오르고 힘도 덜 듭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들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자신만을 위해, 또는 남을 누르는데 쓰기 때문에 힘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힘을 서로 나누며 돕는데 쓴다면 오히려 그 힘은 선한영향력을 발휘해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힘의 원리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힘의 원리를 알고 있지만, 이를 잘못 사용해서 하나님께 책망 받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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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습니다. 그때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알아보니 그 여인은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이미 결혼을 했고 그래서 남편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서 그 여인을 데려왔고,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밧세바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묘수를 생각해 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야를 불러들여 휴가를 주고, 집에 들어가 밧세바와 잠자리를 갖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충직한 군인으로 동료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자신만 집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동료들과 머물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전쟁터로 나아갔습니다. 

다윗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살인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상관인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를 선봉에 세우고 우리야를 죽게끔 하라는 편지를 썼고, 다윗의 편지를 본 요압은 다윗 왕의 명령을 따랐고, 우리야는 결국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여인이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자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다윗은 정말 못 됐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왕들은 그랬습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능히 그리고도 남을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칼의 힘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물질의 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에게는 신앙의 힘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우리야는 다윗을 위해 목숨을 내걸은 부하였고, 밧세바는 그런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그 당시 여인은 소유물이요, 재산 가치에 불과 했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힘을 가진 왕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고 어쩌면 그것쯤은 눈감아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윗의 이야기는 바로 이 힘 때문에 다윗이 타락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행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본래 다윗의 힘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원래 시골 베들레헴의 목동이었습니다. 형제들 중에 제일 막내였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겁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힘을 주신 겁니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들고나간 무기라고는 물맷돌 다섯 개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골리앗을 이긴 것은 그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이렇게 다윗은 그 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힘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모든 힘을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힘을 자기의 소유로 삼았고, 자기의 소유를 늘리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그 힘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다윗은 처음부터 자기가 갖고 있었던 자기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자기의 것으로 삼기 위하여 그 힘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사용하는 순간, 그 힘은 하나님 앞에 타락한 힘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힘은 매력적인 것이지만 힘은 우리를 유혹해 죄를 짓게 만드는 위험한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을 보십시오. 한 결 같이 그 끝이 어떠했습니까? 본인이나 그 가족들이 모두 잘못된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고 재판을 받고 그랬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이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결국 그 힘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힘을 자기의 소유로 삼았고, 그 힘으로 자기의 소유를 더 갖기 위해 사용했던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란 위치에서의 힘은 국민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을 사사로이 사용하다가 결국 그 힘에 의해 자기 스스로 잘못된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위임된 것입니다. 
한 집안의 가장은 가족이 위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을 지키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쓰라고 가족들이 위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으로 아내를 때리고, 아이들을 때리고, 자기의 말을 무조건 복종하라고 한다면 이 힘은 이미 타락한 힘인 것입니다. 그것은 힘이 아니라 파멸과 죽음을 불러오는 폭력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힘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용납 될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냈고,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했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없었습니다. 

가난한 자는 그 어린양을 자기의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어린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데 자기의 양이나 소를 잡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을 대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 왕은 그 부자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면서 화를 내면서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계심을 두고서 맹세 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내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힘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스라엘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힘은 물론 이거니와 자신이 섬겨야 할 이스라엘 나라도 자기의 소유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이렇게 다윗의 악한 행위를 말씀하시고 이에 대한 벌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 왕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가진 힘에 비하면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힘으로 얼마든지 나단을 한 칼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며 책망하는 나단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하고 말하자, 그의 교만은 깨어졌고, 자기 힘이라고 착각했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에게 자백 하였습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은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전하는 말은 나단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힘없는 나단 앞에선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선 것이고, 그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저지른 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힘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 다윗을 무릎 꿇게 하신 힘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혼돈된 세상을 질서의 세상으로 만드신 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혼돈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셨고, 모든 힘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힘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우리가 다시 설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여름에 우리나라에는 태풍이 오는데, 이 태풍들은 굉장합니다. 그 굉장한 바람의 힘은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망가뜨립니다. 부셔버립니다. 죽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부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봄바람은 겨우 나뭇가지 잎들을 흔들 정도지만 땅 위에 싹이 나게 합니다. 나무마다 잎을 피우게 합니다. 꽃을 피우게 합니다.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크고 강한 것만이 진정한 힘이 아니라 부드럽게 부는 봄바람이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 진정한 힘입니까? 진정한 힘은 모든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힘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힘을 내 소유로 생각하고 내 소유를 더 가지기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타락한 힘이요 결국은 나와 모든 것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섬김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이 나를 살리고, 여러분을 살리고, 온 세상을 살리는 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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